신용회복경험담
사회생활 시작, 미래를 향한 기대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6.2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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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입부: 사회생활 시작, 미래를 향한 기대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으로 입사한 회사는 직원 40명 정도 되는 중소기업이었습니다. 인사팀 사원으로 입사해 급여는 세후 220만 원 정도, 경력은 없지만 일 하나하나 배우며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매달 월세와 생활비를 아껴가며 적금을 붓고, 주말이면 부동산 관련 유튜브를 챙겨봤어요. 20대라도 ‘부동산은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휩쓸려 저도 ‘내 집 마련’이 아닌 ‘투자용 아파트 구입’이라는 무모한 꿈을 꾸게 됐죠.

■ 전개: 작은 욕심이 큰 무너짐이 되기까지
2021년, 경기도 외곽 지역에 있는 분양권을 프리미엄을 주고 계약했습니다. 계약금과 중도금 일부는 부모님 몰래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나머지는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았습니다. "금방 오를 거예요"라는 중개인의 말과, "신혼부부들 몰려들어요"라는 주변 분위기에 홀린 듯이 말이죠.
하지만 입주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금리는 오르고, 집값은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잔금 납부 시점에 대출 승인이 나지 않아 일시적으로 카드론으로 버티는 무리수를 뒀고, 결국 이자만 월 70만 원이 넘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집은 팔리지 않았고, 대출 연체는 시작됐습니다. 어느 날부터는 은행, 카드사, 저축은행에서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가 왔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결국 총 채무는 1억 7천만 원. 제 연봉의 4배를 훌쩍 넘는 수준이었죠.

■ 위기: 월급날이 가장 무서운 날이 되다
도저히 혼자 감당이 되지 않아 사내 익명 게시판에 “채무 문제로 괴로운 분 계신가요?”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어요. 누군가 댓글로 “개인회생 알아보세요. 나도 그걸로 살았어요”라는 짧은 문장을 남겨줬습니다.
그 한 줄이 계기가 되어 2주간 법률상담을 검색하고, 개인회생 절차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상담을 받기까지도 한참 망설였어요. 나이도 어리고, ‘이런 제도가 나 같은 사람에게도 되는 걸까?’ 싶었거든요.
상담을 받던 날, 상담사 분이 “무리한 투자로 인한 회생 신청은 법원에서도 일정 기준만 맞으면 가능해요.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줬을 때 처음으로 안심이 됐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던 것도 그 순간이었고요.

■ 해결: 절차는 고됐지만, 한 줄기 빛처럼
개인회생 절차는 상담부터 인가까지 약 5개월이 걸렸습니다. 회사 재직증명서, 소득증빙서류, 지출명세표까지 직접 꼼꼼히 준비했고, 법원에서는 월 변제금 30만 원, 총 3년간 1,080만 원을 갚는 계획을 인가해주었습니다.
변제 개시 후 첫 3개월은 정말 힘들었어요. 식비와 교통비, 통신비까지 아껴도 돈이 모자랐고, 외식은커녕 커피 한 잔도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매달 채무를 해결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만은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법원 출석 당시 판사님이 “젊은 나이에 큰 결심을 하셨네요. 성실히 임하시면 회복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신 것도 큰 위로가 되었어요.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였습니다.

■ 결말: 다시 일어서는 20대의 이야기
지금은 개인회생 변제 1년 차입니다. 회사는 여전히 다니고 있고, 매달 정해진 금액을 성실히 갚고 있어요. 직장 내 인간관계, 업무 스트레스는 여전하지만, 마음만큼은 훨씬 가볍습니다.
무리한 투자로 인해 젊은 시절을 빚으로 시작했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중요한 건 실패 뒤에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가니까요.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저처럼 부동산 투자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개인회생은 재기의 도구이지 낙인이 아닙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하루하루를 회복해나가고 있습니다.

